알베르 까뮈: 세계는 설명하지 않는다.
2025년 6월 25일,
아내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날은 특별히 어둡지도,
유난히 밝지도 않았다.
강북삼성병원 유방외과 대기실은 늘 그렇듯 사람들이 넘쳤고,
간호사는 중립적인 표정을 유지했고,
의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이 일이 이미 오래전부터 결정되어 있었고,
지금은 단지 통보의 순서만 남았다는 듯이.
그러나 아내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물었다.
“제가 아닌 것 아닌가요?”
“혹시 검사 결과가 바뀐 건 아닌가요?”
그 질문은 항의가 아니었고,
부정도 아니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를
끝까지 확인하려는
사람의 말이었다.

알베르 까뮈: 부조리
아내는 평생 바르게 살았다.
자기 몫보다 더 책임졌고,
남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았으며,
불평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나는(혹은 많은 환우들은) 그런 삶이
어떤 식으로든 보호받을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바로 그 믿음이
알베르 까뮈가 말한
부조리의 핵심이었다.
즉, "인간은 의미를 요구하지만,
세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내의 암은
'벌'이 아니었고,
'의미'도 아니었고,
'교훈'도 아니었다.
"그저 생겼다."
7월 7일,
아내는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노도, 다짐도
딱히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기도는 했다)
까뮈의 말처럼
이 세계에는
선과 보상의 교환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착하게 산 삶이
덜 아프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수술 이후,
온코검사가 이어졌다.
수치와 확률,
재발 가능성과 위험군이라는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그 모든 설명은 합리적이었지만,
나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이성은 상황을 정리했지만,
의미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까뮈가 말했듯,
세계는 이해 가능하지만
납득 가능하지 않다.
항암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시간,
방사선 치료의 일정,
그리고 이후 5년에서 10년까지 이어질
약물치료의 계획.
이 모든 것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에 대한 답이 아니라,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장들이었다.
까뮈는
부조리를 해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설명으로 덮으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한다.
알고도 살아가라.
아내는 묻지 않았다.
“왜 하필 나냐”고.
그 대신
해야 할 치료를 받아들였고,
지켜야 할 시간을 견뎠으며,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의 크기로 감당했다.
희망이 아니라,
체념도 아니라,
도망도 아닌 태도.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인간으로 남는 선택.
이제 우리는
긴 시간을 함께 건너야 한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뒤에도,
약물치료는 계속될 것이고,
5년, 혹은 10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
확실한 보상은 없다.
약속된 결말도 없다.
그러나 까뮈가 말했듯,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아내는 오늘을 살아내는 쪽을 선택했고,.
나는 아내를 지킬 것이다.
아내의 유방암은
우리 삶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붙들고 있던
허약한 설명들을 벗겨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 한 문장이 남았다.
"세계는 침묵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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