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건강/유방암

아내의 유방암 일기(수술 기록)

moodyblues 2025. 12. 3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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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7일

아내의 수술 날

아내는 B동 668호, 1인실에 입원해 있었다.
면회 규정상 보호자 외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다만 ‘조용히, 눈감아 주는 선’이 존재했다.

전날 밤, 그 틈을 타 도혜와 철준이가 잠시 병실에 다녀갔다.
엄마를 안심시키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돌아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환자와 나는 그날 밤, 견딜 수 있었다.


새벽

05:45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아내에게 수술복을 입혔다.
아내는 불안하거나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차분했고, 담담했다.
오히려 그 감정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얼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수술 전

07:21
도혜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를 안심시키는 말,
그리고 나를 안심시키는 말.

07:30
핵의학과에서 림프절 촬영.

07:35
아내를 수술실로 옮기러 왔다.
B동에서 A동으로 이어진 공중다리를 건넜다.
침대를 미는 사람의 등을 따라
나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수술실은 A동 2층에 있었다.

07:45

아내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실 앞에는 보호자 대기실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와
병실로 가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아내의 유방암 일기(수술 기록)
수술실 앞


수술 중

08:00
도혜와 철준이의 문자가 계속 도착했다.
안심의 말, 기도의 말, 종교적 주술적인 문구들.
나는 하나하나 읽으며
마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인 사람처럼
그 문장들에 매달려 있었다.

08:25
수술 시작.

09:35
수술 종료.
회복실에 있다는 문자가 왔다.
마취에서 깬 뒤 통증이 가라앉으면
병실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다시 수술실 앞으로 갔다.
환자는 볼 수 없고, 병실로 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다시 들었다.

그래서 수술이 잘 되었는지,
의사를 만나지도 못했고,
문제가 있었는지 직접 묻지 못했다.

다만 나는

문제가 있었다면
수술이 끝나자마자 의사가 나를 불렀을 것이다.
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다.


병실로 돌아오다

10:36
“최○○님 병실로 이동”이라는 문자가 왔다.

10:40
아내가 이동 침대에 실려 병실로 들어왔다.
나를 보고, 나를 알아봤다.
그리고 말했다.

“너무 많이 아파…”

그 말은 짧았고,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생생했고, 지금도 내 기억속에 너무나 무겁게 남아 있다.

10:45
간호사를 불러 통증 조치를 요청했다.
진통제가 연결되었다.

간호사는 말했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자면 안 됩니다.
마취를 완전히 깨야 합니다.


낮 시간

도혜와 철준이의 문자는 계속 이어졌다.

“엄마 잘 챙겨줘.”
“안심시켜 드려.”

도혜는 점심시간에 병실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밥이나 물은 언제부터 먹을 수 있습니까?”

아내는 여전히 통증을 호소했고,
추가 진통제를 요청했다.

점심 무렵, 도혜가 시간을 쪼개
옥수수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아 왔다.
면회가 허용되지 않아
간호사가 들어오면
커튼 뒤로, 혹은 화장실로 몸을 숨겼다.


오후

15:00
의사는 아직 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내일
전신 뼈 스캔과
골밀도 검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15:38
아내가 처음으로 화장실에 다녀왔다.
소변 색이 파랗다(Blue 색)고 말하자
약물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16:48
회사로 복귀한 도혜에게서 문자가 왔다.

“환자 좀 자게 해줘.”
“보호자도 근무 태만하면 안 돼.”


의사 면담

17:00
의사가 병실에 들렀다.

온코타입(Oncotype)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 결과가 좋으면 항암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음.
(그러나 우리는 결국 항암의 시간을 지나가게 된다.)

갑상선 결절로 추가 초음파 필요.

내일 전신 뼈 스캔, 골밀도 검사.

방사선 치료는 필수.

항암 여부는 온코 검사 결과로 결정.

오늘 떼어낸 조직으로
최종 병기와 치료 방향을 정한다.


남은 기억

아내는
병실로 들어오며 나를 알아본 기억도,
“너무 많이 아파”라고 말한 기억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날의 고통은
그 순간을 버틴 사람에게만 남고,
몸은
그 기억을 지우는 쪽을
선택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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